영동 공용 창고

"큭...!"

현재나이 25세, 아니 이곳에 오고 벌써 2년 남짓한 세월이 흘렀으니 사실상 27세의 나이로 본의 아니게 이세계에서 용사의 동료 일을 하고 있는 나는 지금 눈 앞에 있는 마왕을 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내가, 정확히는 용사인 내 후배가 이 세계로 소환된 원인인인 마왕. 중2병 시절 소설이나 만화로 봤던 그런 위압감있게 생긴 마왕은 절대 아니었지만 그의 몸에서 발해지는 강함은 소설이나 만화에서 봐왔던것 이상이었다.

특히나 그 움직임에서 보이는 관록은 어렸을적부터 여러가지를 단련해온 나로서도 놀라울 정도였다.

"선배! 괜찮아요!"

용사의 검 엘류시온을 휘두르며 마왕의 맹공을 받아낸 후배를 보며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터무니 없는 강함- 용사보정을 받고 있는 후배를 저정도로 몰아치다니... 지금 후배의 강함은 나조차도 뛰어넘고 있건만 그런 후배를 가볍게 압도하고 있었다. 마력으로는 대등하고 검의 기량은 후배쪽이 더 강했지만 마왕은 오랜 전투경험과 다른 기량, 그리고 용사보다 다 강력한 신체능력으로 전황을 압도하고 있었다.

"한명만 더 있었으면... 아니 도리어 방해일려나."

용사일행이라고 해봐야 두사람. 전위이자 권사인 나와 전위와 후위를 모두 커버하는 버그캐 용사인 후배 두사람 뿐. 솔직히 어설프게 강한 사람이 있어봤자 나와 후배를 쫓아오지 못하는데다가 후배가 용사로 각성하고 나서는 후배가 다 알아서 해결이 가능했으니 다른 멤버 충원의 의미가 없었다.

"그래도 한 두사람 정도는 충원할걸 그랬군. 이정도로 강할 줄 알았으면-"

가전의 기공을 발하자 전신에 자색의 기운이 일기 시작했다. 기공이 전신에 충만해지자 나는 재빨리 혈류를 제어해 초음속의 영역까지 가속된 펀치를 날렸다.

어깨에서 팔꿈치까지의 1단, 팔꿈치부터 손목까지의 2단, 손목부터 타격점까지의 3단 가속을 거친 나의 주먹은 공기를 찢으며 마왕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마침 마왕은 후배를 향해 공격을 날리고 있는 상황, 피할 수 없는 체크메이트적 상황이었다. 상대가 마왕만아니었다면-

파캉

요란한 유리깨지는 소리와 함께 검은 막이 무너져 내렸다. 마왕의 방어결계. 어느새 친 것일까? 물론 기공이 한껏 담긴 초음속의 권격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지만 속도로 인해 위력을 얻는 권격은 한번 속도가 줄어들면 그 위력은 현저히 줄어들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위력이 줄어든 권격은 마왕에게 타격을 줄 수 없었다.

위력이 죽은 것을 깨달은 나는 재빨리 주먹을 회수하며 품안으로 파고들었다. 결계를 치지 못할 근거리에서의 난타. 지금까지 온갖 공격을 실패한 나의 생각이었지만 그 생각은 꽤나 주효했는지 마왕은 나에게 거리를 내주지 않기 위해 발걸음을 물리며 나의 범위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챈 후배는 재빨리 마법으로 거리를 벌리려던 마왕을 방해했고 그 도움에 힘입어 나는 손쉽게 거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거리를 확보한 순간 소나기와 같이 쏟아지는 맹격-

뼈와 살과 근육을 뭉개 하나로 뭉쳐버릴듯한 권격의 노도 속에서 마왕은 방패 대용으로 쓰고있던 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보통 칼이었다면 아마 단번에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나 역시 마왕이 사용하는 칼이라 그런지 바위조차 단번에 박살낼 권격 속에서도 상처하나 없었다.

"브레이크-!"

단번에 칼에 담긴 마력을 해방한 마왕은 엄청난 압력으로 나를 날려버리며 그대로 마법을 날렸다. 계통은 화염계- 물론 화염이 마왕으로선 가장 펼치기 쉽고 위력도 나오기 때문에 한 선택이겠지만 나로서는 덕분에 살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만약 빙결계나 전격계면 대처하기 어려웠을 테니까.

칼날 형태의 기를 팔에 두른 나는 그대로 팔을 휘둘러 화염을 베어버렸다.

"반칙이군 그 힘은, 어떤의미론 용사보다도 반칙이야"

"그게 마왕이 할 말이냐!"

마왕의 말에 재빨리 파고드는 난 발차기로 마왕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명치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마왕은 그것을 피하거나 막는 대신 갑주를 일그러뜨리고 있는 내 손을 잡은 후 막대한 전격을 퍼부었다.

"끄아아악!!"

"선배!"

갑작스런 전격에 혼미해 지는 정신, 하지만 가까스로 한가닥의 이성을 붙잡은 나는 기공을 한층 더 끌어올리며 아직 자유로운 왼손으로 마왕의 머리를 강타했다.

하나, 둘, 셋-

순식간에 세번의 공격이 마왕의 머리를 강타했다. 물론 마왕의 방어력이 엄청난 만큼 크게 티는 나지 않았지만 머리에 상당한 충격이 가해진것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우랴야야야야야야야!!!"

전격으로 근육이 수축되고 신경전달이 잘 되지 않아 정신이 혼미한 상황에서도 나는 주먹을 멈추지 않고 마왕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 사이 마왕은 방벽을 몸에 두르듯 전개하는 방식도, 풍압결계로 나를 날려버리는 방법도, 폭발을 일으켜 나를 날려버리는 방법도 사용해 봤지만 나는 그런 방법들을 단순무식하게 버티며 오로지 머리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큭... 정말 무식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이군"

마왕은 그렇게 말하며 침음성을 흘렸다. 그럴만도한게 내 주먹은 마왕도 맞으면 아픈 주먹이다. 그런걸 지근거리에서 몇십발씩 맞고 있는데 타격이 없을리 없었다. 그러나 이대론 타격을 줄 수 있을지언정 결정타는 되지 못했다.

물론 나혼자만이라면 말이다.

"후배야! 날려버려라!"

"하아아!"

순간 마왕성 어전을 뒤덮는 용사의 검 엘류시온의 빛, 그 빛은 단순한 압력만으로 어전을 박살내며 하늘로 치솟았다. 역대 어느용사도 발하지 못한 찬란한 빛- 아마 다른 용사가 이만한 빛을 발하려면 이 세계의 인류 절반이 사멸해야 하리라.

"크왓!"

엘류시온의 빛에 재빨리 마왕에게서 벗어난 나는 후배가 휘두른 엘류시온이 만들어낸 광경을 보며 터무니 없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들이 싸우고 있던 어전이 완전히 박살나고 성밖에 있던 탑들도 어전 높이를 기준으로 완전히 잘려나갔다.

만약 후배가 엘류시온을 제어하지 않았다면 마왕성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을 것이라-

"몇번을 생각하지만, 그 검 위력 터무니 없어. 부스트 한번에 그정도 위력이라니"

"하아, 하아. 다른 용사때는 이정도까진 아니었다고 하던데요"

"네가 특별한거야? 아니면 다른 용사들이 부실한거야?"

나는 그렇게 솔직한 감상을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저 성검 엘류시온이 용사 이외에는 반응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만한 위력까진 아니더라도 대포만한 위력을 마구 쏴대는 저 검은 확실히 위험한 물건이니까 말이다.

"이제 이걸로 돌아가게 되는 걸려나."

"마왕을 쓰러뜨렸으니까. 우리 할 일은 다 한거죠"

본래 소환되자마자 무구를 얻고 사명을 이행해야할 용사인 후배였으나 근처에 있던 나까지 말려들면서 전혀 엉뚱한 곳에 떨어져 1년동안 해메게 되었다. 덕분에 강해질 수 있긴 했지만서도...

"역시 고생이 심했지. 말은 어째어째 통했지만 그렇다고 고생이 적어지는건 아니니 말이야."

"그래도 어떤의미로 보자면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요."

"하기사 이런 경험도 쉽지 않... 위험해!"

재빨리 기공을 발하며 땅을 박찼다.

후배를 구한 나는 어깨에서 등으로 이어지는 화끈함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마치 타는듯한 고통속에서 쉼호흡으로 고통을 줄인 후 고개를 들어올리자 칠흑빛을 발하고 있는 검을 들고 마화(魔火)를 피우고 있는 마왕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아까의 공격으로 많은 상처를 입었는지 몸 여기저기서 보랏빛이 감도는 검붉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아까는 정말 죽을뻔했다."

"그걸 버틸 수 있었을리가!"

"확실히 버틸 수 없었을 거야 이 칼이 없었다면 말이지."

나의 경악에 마왕은 칠흑빛을 발하는 검을 내밀며 말했다. 마왕이 내민 검은 얼마지나지 않아 마왕의 마력을 버틸 수 없었는지 산산조각 나 바닥에 떨어져버렸다.

"마계의 이름난 장인들로 만들어낸 검이다만 역시 전설의 검인 엘류시온의 일격을 버티는 것이 한계였군."

"그것만으로도 터무니 없다 생각하지만. 큭!"

"선배!"

등에 감각이 없었지만 축축들러붙는 느낌이 느껴졌다. 후배의 안색이 창백해질 정도면 보나마나 중상. 아니 감각이 사라진 상황이라면 다른 이라면 그대로 죽었을지도 모를 상처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확실하게 기공이 줄어드는 걸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봐선 심각한 출혈. 치사수준까진 앞으로 3분... 아니 1분 전후.

"후배야..."

"선배 빨리 치유를!"

"필살기 준비해 둬라- 이번엔 확실하게 죽일 수 있는 걸로."

"잠깐 선배 무엇을 빨리 치료부터!"

나는 후배의 말을 무시한채 땅을 박찼다. 출혈이 심해 '혈류제어'를 이용한 가속도 배가는 불가능 했지만 여전히 상식을 넘어선 속도로 마왕의 코 앞까지 돌진했다.

피가 흩뿌려지며 폐허와 후배의 몸에 그 붉음을 물들였다. 마왕은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대단하다는 표정과 함께 찬사를 보냈다.

"대단하군 괴물. 그런 상태로도 움직일 수 있다니."

"나도 놀라워 마왕, 설마 막았다곤해도 그 공격을 맞고 곧장 그만한 공격을 날릴줄은"

"빨리 치료받는게 좋지 않아? 그정도 출혈이면 곧 죽는다고"

"후배녀석이 나를 치료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빨라도 수십초. 그 시간이면 네 녀석은 내 후배한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잖아. 안그래?"

"확실히- 그러니까 넌 그몸으로 날 상대한다는 무리수를 펼치는거고."

"서로 잘 알고 있잖아. 친구-"

"그래, 친구"

피차 서로에 대해 모르고 있었기에 친구였던. 하지만 알아버렸기에 친구라 부르지 못했던 두 사람은 마지막의 마지막에 다시한번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며 미소를 지었다.

"후회하기 없기다."

"물론-"

요란한 굉음과 함께 진각을 밟았다. 몸에 힘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음에도, 피에 기공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음에도 진각의 위력은 바닥에 금을 새기고 본성을 뒤흔들만큼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파천황破天荒!"

"데몬즈 플레어"

힘을 남기지 않고 몸 구석구석에 잔류하는 기공을 남기지 않고 끌어올렸다. 나중따윈 필요없었다. 지금 필요한것은 그저 모든 힘을 한점에 모아 날려버리는 것뿐-

그것은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마왕의 경우 뒤에 용사도 상대해야 했지만 이정도로 소모된 상황에서, 그리고 아까의 기습이 실패한 순간 사실상 용사를 이긴다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니까 최소한도로 친구와 마지막 결착을 짓기 위해 남은 힘을 모조리 끌어올렸다.

"자하광천폭紫霞光天爆!!"

"다크니스 프로미넌스!"

보랏빛을 띄는 칠흑이 시야를 가렸다. 모든 것을 태우는 마계태양의 빛이 마왕의 손에서 발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미 경각에 달한 목숨. 그저 전력을 다해 기술을 발할뿐-

"타핫!!!"

주먹을 내지르자 무지막지한 노을빛이 폭산했다. 칠흑의 태양빛과 자색의 노을. 두개의 강렬한 빛은 안그래도 반파상태인 마왕성은 두 무지막지한 기술에 완전히 붕괴되기 시작했다.



"훌륭하군 용사-"

붕괴가 끝나고 붕괴에 의한 먼지가 가라 앉자
마왕은 침음성을 흘리며 불타오르고 있는 옆구리의 검상을 바라보았다. 무너지는 마왕성, 그 파편속에서 정확히 그의 위치를 파악하고 자신이 눈치채기도 전에 절대선공의 검기로 그를 베어버린 것이었다.

이쯤되면 방해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보다도 경의가 생겼다. 이런 칼을 휘두루기 힘든 상황에서 단순한 검기劍技만으로 자신을 베었다는 것에 말이다.

"이리되면 서로 양방패인가... 아쉽군. 한번쯤은 이기고 싶었는데."

검상에서 피어오르던 불길은 이윽고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고 이윽고 전신을 태우기 시작했다.

"미련은 없다. 유일한 미련이라면 나의..."


마왕은 마지막말을 채 끝내지 못한채 이내 엘류시온에서 발해진 성화에 휩싸여 타오르기 시작했다.

용사는 그런 마왕을 무시한채 재빨리 선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까 사투의 영향과 출혈로 이미 생사의 갈림길에 선 상황 용사는 생각할 것도 없이 자신이 쓸 수 있는 치유술 중 최상위의 치유술 '여신의 눈물'을 사용했다.

찬란한 녹광이 선배의 몸을 감싸며 마치 시간을 역행시키듯 그 몸을 치유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치료가 반정도 진행 되었을때 선배에 대한 치료를 가속화하기 위해 힘을 발휘하던 후배는 문득 선배에게로 향하던 자신의 힘이 차단된 것을 느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둥그런 막을-

"뭐?"

그것은 자신이, 그리고 선배가 소환되었을때랑 같은 현상. 용사는 재가 된 마왕의 시신을 보며 그 이유를 깨닫고 말았다.

용사의 일은 마왕을 없에는것. 그 역할이 끝난 용사는 이 세계에 사람들, 특히 원력자들에게 껄끄러운 존재였다. 그리고 이 세계도 어쩐지 용사는 그다지 반기지 않는것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마왕을 쓰러뜨린 용자를 기다리는것은 가차없는 강제송환. 물론 이쪽에 소환되었을때처럼 선배의 몸을 잡고 있다면 같이 돌아갈 터였으나 지금은 떨어져 있는 상황. 결국 자신만이 강제 송환된다는 이야기였다.

강제 소환과 강제 송환 대상은 오로지 '용사' 뿐이었으니까.

"선배!!!!"

용사의 비통한 외침과 함께 빛의 기둥이 마왕성에서 생겨났다. 대륙 전역에서 용사의 귀환을 알리듯 빛나는 빛의 기둥을 본 사람들은 오랜 싸움이 끝났음을 기뻐하며 용사를 찬양했고 살아남은 마족들은 마왕의 죽음을 슬퍼하며 용사를 저주했다.

그렇게 이야기는 끝났다.

아니 끝날뻔 했다.

한 소녀만 아니었다면...



"아버지..."

마왕의 성 가장 안쪽방에서 나온 소녀는 폐허가 된 어전을 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그 웅장하던 어전은 너덜너덜해지다 못해 천장은 완전히 부서져 통기성 200%를 자랑하고 바닥도 여기저기 무너져 불안불안한 광경을 연출했다.

그런 어전을 살펴보던 소녀는 아버지로 추정되는 재가 된 시신과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것으로 추정되는 사내를 볼 수 있었다.

'이번대 용사는 여자라 들었으니 아마도 아버지를 죽이고 강제 송환된 용사의 동료겠지...'

그렇게 생각한 소녀는 품안에 가지고 있던 단도에 자신도 모르게 손을 가져갔으나 이내 아버지가 마지막 싸움에 들어가기전에 하 말인 무슨 수를 쓰더라도 살아남으란 말을 떠올리며 단도로 가져가던 손을 내렸다. 잘 생각해보면 그녀가 죽일 수 있는 상대일리 없었다. 상대는 아버지와 맞서싸운 용사의 동료. 아무리 기절한 상태라도 10살도 못되는 여자아이가 휘두른 단도가 강철과도 같은 육체를 지닌 전사의 몸을 꿰뚫을 수 있을리 없었다.

더구나 그 단검이 전투용도 호신용도 아닌 의례용이라면 더더욱

"으음..."

"응?"

잠깐 생각에 빠진 사이 신음성을 들은 소녀는 눈앞에 사내를 보았다. 정신이 든건지 아니면 고통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음성을 흘리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소녀는 다시한번 눈앞에 사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고민해야만했다.

그 사이 일어난 사내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여긴 어딘거지? 난 왜 여기에..."

사내의 반응에 소녀는 마침 잘됐다는 표정으로 사내를 향해 다가가 입을 열었다.

"아빠 괜찮으세요?"

"뭐? 아빠라니"

"아빠도 참 아까 머리 맞은데가 안좋으셨나. 아빠의 양녀인 미아에요"

"미아?"

사내는 그 말에 뭔가를 떠올릴듯 갸웃 거리렸지만 자신을 딸이라 주장하는 미아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지간히 심하게 구른건지 옷이 너덜너덜 했기에 사내는 주변에 남아있던 천을 주어 몸에 둘렀다.

아무리 딸의 재촉이 있다지만 너덜너덜한 옷 그대로 나서기에는 역시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상식이 용납하지 않았던 탓이었다.

"아빠, 빨리!"

"그래, 잠깐만-"

먼저가던 미아를 뒤따라 걷던 사내는 문득 머리 한켠에 있는 자신의 이름을 떠올렸다. 물론그것이 정말 사내의 이름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 이름에서 울리는 그리움은 그것이 분명 자신의 이름이란 것에 대한 확신을 주고 있었다.

"시준.. 한시준"

그것이 사내의 이름이었다.



"선배... 선배!"

홀로 원래 세계로 돌아온 후배는 모든것의 시작이자 자신과 선배가 이 세계로 소환되었던 장소인 중앙공원에서 오열하고 있었다. 선배를 데리고 오지도, 살리지도 못한채 자기 혼자만이 선배의 희생으로 목숨을 건진채 원래 세계로 돌아온 것이었다.

"이런건 아니라구!"

아직 하지 못한 말이 있었다.

아직 전달하지 못한 마음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상황을, 이러한 마지막을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인정할것은 인정해야만 했다. 자신의 치료는 선배에게 닿지 않았고 선배가 입은 상처는 불완전한 치료로 살릴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상처가 아니었다.

선배는 저쪽 세계에서 죽은 것이다.

용사라면 뭘 하는가? 지상 최강의 인간이면 뭘하는가?

은애하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하나 지키지 못한 존재인데 말이다.

깊은 슬픔에 잠긴 후배는 문득 자신이 겪은 모든것이 꿈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자신이 입고 있는 용사의 갑옷과 용사의 검인 엘류시온이었다.

지난 1년간 자신의 손에 완전히 익어버린 용사의 검 엘류시온은 아직도 자신의 손에서 그 빛을 발하고 있었다. 용사의 힘에 반응해 용사가 가진 재능과 의지를 힘으로 바꾸는 보구.

그리고 절대불변하는 용사의 증표.

결국 현실도피조차 하지 못한 여인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목놓아 울었다.

"바보야 날 좋아한다면서 왜 날 혼자두는거야. 선배"

여인의 이름은 신아영. 선배, 한시준의 대학 후배이자 이세계의 용사, 그리고 한시준이 수년간 찾아다닌 첫사랑이었다.